오래된 전문서적, 고물상 대신 ‘공공 헌책방’ 보내면 안 될까요? - 강재규 법학과 교수
교육부 집계를 보면 해마다 대학교수 1천여명이 퇴직하는데, 대부분의 교수는 연구실 등에 갖고 있던 책을 퇴직과 동시에 버린다. 퇴직교수 한명이 버리는 책을 2천권으로 가정하면 연간 200만권의 책이 버려진다는 계산이 나온다. 경남지역 학계와 시민사회단체 원로들이 ‘좋은 책을 지키고 싶은 사람들’이란 모임을 꾸리고 ‘공공헌책방’ 설립을 고민한 것도 교수 퇴직과 함께 버려지는 책들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이다. 이들은 지난 25일 “대학교수 등 연구자들이 소장한 책과 연구보고서는 사회적 자산”이라며 “보존할 가치가 있는 책과 연구보고서를 엄선해서 보존·전시·대출하고 판매도 할 수 있는 공공헌책방을 만들자”고 경남교육청에 제안했다.
이 모임에는 서 전 교수와 김재현 전 경남대 철학과 교수, 전점석 전 경남람사르환경재단 대표, 허정도 전 경남도 총괄건축가, 강재규 인제대 법학과 교수, 이윤기 마산와이엠시에이(YMCA) 사무총장 등이 참여했다. 이들은 출범 선언문에서 “사회의 지적 자산을 허무하게 폐기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보존할 가치가 있는 책들을 선별해서 보관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새로운 독자와 만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했다. 이들이 공공헌책방 후보지로 꼽는 곳은 학생 수 감소로 문 닫는 학교들이다. 공공헌책방을 만들어 보존 가치가 있는 전문서적과 연구보고서를 선별해 관리하면서 연구자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강재규 교수는 “시민단체 ‘김해진영시민연대 감나무’는 그림책·동화책 등 어린이용 헌책을 기증받아서 진영전통시장에서 장날마다 권당 1천원에 팔고 있다. 헌책을 사려고 전통시장을 찾는 젊은 부모와 어린이를 통해 전통시장에 활기를 불어넣는 효과가 있다. 공공헌책방도 이런 구실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허정도 건축가는 “헌책방이 문을 열면 은퇴한 연구자·작가와 독자가 만나고, 낡은 종이 냄새 가득한 서가에서 공정무역 커피를 즐길 수 있는 지역 문화공간으로 자리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제안을 받은 경남도교육청은 취지는 좋지만 수용 여부는 더 고민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임채정 경남도교육청 공공도서관 담당 사무관은 “경남대표도서관이 귀중본 등을 보존하기 위한 공동보존서고 기능도 하고 있으나 규모와 기능에 한계가 있는 게 사실이다. 다만 경남에 있는 27개 공공도서관이 해마다 전체 소장 도서의 7%를 불용 처리해서 헌책을 폐기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종합해서 공공헌책방 제안을 면밀히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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